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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에이스 손흥민 이야기

by 똥크리미 2022.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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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축구의 희망
손흥민

대한민국 축구 에이스이자 희망인 손흥민 선수입니다.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최고의 선수가 된 손흥민 선수입니다. 

독일에서 프로선수로 데뷔하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으로 이적해서 프리미어리그를 휘젓고 있는 손흥민 선수에 대한 소개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대표선수로서 대체 불가능한 선수이며 리그에서는 해리 케인과 함께 EPL프리미어리그 최고의 듀오로 올라서고 있는 손세이셔널 손흥민입니다. 1992년 7월 8일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프로 출신 선수였던 아버지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공을 매우 좋아하는 아이였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축구를 하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부탁을 하였고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한다는 조건을 걸고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한 뒤부터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았고 아버지는 손흥민에게 승패의 집착과 부담을 버리게 만들고 축구 자체를 즐기게 하기 위해서 기본기를 충실히 가르쳤다고 합니다. 축구를 즐기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잘해서 이겨야 즐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의 생각 때문에 기본기에 충실하고 틀에 박힌 전술 훈련보다 개인 기술 위주의 훈련에 많은 집중을 하였다고 합니다. 하루에 기본기 훈련을 6시간을 했다고 합니다.  오프 더 볼보다는 양발을 모두 잘 쓰는 기술을 아버지에게 훈련을 받기 위해서 오른발잡이였던 손흥민에게 모든 루틴을 왼발부터 하게 하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훈련장 들어갈 때도 의식적으로 왼발부터 신발끈을 묶을 때도 왼발부터 묶게 하고 오른발보다 왼발로 하는 훈련을 1.5배 더 시켰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손흥민골

 

어린 시절 손흥민은 아버지의 혹독한 훈련에 의해서 만들어진 선수라고 손흥민 선수도 말할 정도였습니다. 때론 많이 혼내기도 했지만 손흥민 선수의 뒷바라지를 충실히 해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에 아버지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존경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유망주로 급성장하며 동북고 1학년 시절인 2008년 축구협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장학생으로 발탁이 되어 독일 함부르크로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친구 3명과 같이 갔지만 그중 손흥민만 함부르크에 남아 계약을 하게 됩니다. 

 

이때 유스에서 08/09 시즌 15경기 9골 

09/10 시즌 시즌 후반기에만 11경기 6골을 넣으며 시즌 도중 함부르크 B팀으로 승격을 합니다. 입단 초기 손흥민은 심한 향수병에 걸려 한국을 많이 그리워했습니다. 가족과 한국음식을 그리워했고 언어장벽과 인종차별도 손흥민을 많이 힘들게 했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힘들어하는 손흥민을 위해 독일 이주를 결정했습니다. 다음 시즌이었던 2010/11 시즌 18살이었던 손흥민은 반 니스텔루이를 만나게 됩니다. 반 니스텔루이(네덜란드 레전드 선수)는 손흥민을 보며 자신의 어렸을 적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며 지도와 조언을 아끼지 않고 많은 도움을 주게 됩니다. 반니가 말하길 "나는 과거에 손흥민이 받고 있는 도움을 받지 못하고 프로 생활을 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도움을 손흥민을 위해 도와주고 싶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리그 데뷔전인 쾰른전에 선발로 나와 데뷔골을 넣으며 구단 역대 최연소 골을 기록, 구단에서는 난리가 났고 함부르크 구단은 우리도 메시가 나타났다며 홈페이지에 극찬의 글을 올렸습니다. 

 

 

 

 

 

대표팀 손흥민

그리고 함부르크는 주가가 올라가고 있는 손흥민은 붙잡기 위해서 2010년 11월 4일 손흥민과 재개약에 성공을 합니다. 재계약을 한 뒤 손흥민은 2주일 뒤 경기에서 멀티골을 터트리며 재개약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실력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전반기 최고의 데뷔 경기와 활약을 보여주며 함부르크 MVP에 뽑히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냅니다. 2011/12 시즌 개막전에는 감기몸살 기운으로 첫 경기는 출전을 하지 못했지만 다음 경기에 선발로 나와서 환상적인 중거리슛을 날려 골로 연결시키며 새벽에 축구를 보는 팬들을 기쁘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팀의 하락세가 계속되고 부상 이후 컨디션이 좋지 않아 시즌 30경기 5골로 마감하며 대단한 활약은 보여주지 못하고 시즌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2012/13 시즌 폼이 올라오면서 손흥민의 질주가 시작됩니다. 3라운드에 시즌 첫 골을 넣고, 디펜딩 챔피언 도르트문트전에서 멀티골을 넣으면서 팀 승리에 기여합니다. 이때부터 꿀벌 사냥꾼 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도르트문트의 유니폼이 노란색과 검은색이 혼합된 옷이어서 꿀벌이라고 칭한다.) 이경기는 도르트문트의 36경기 무패를 무너트리는 충격적인 경기였고 많은 주목을 받게 되는 경기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줍니다. 이때 리버풀이 손흥민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손흥민은 잔류를 선택합니다. 손흥민은 리버풀의 초청을 받아 리버풀에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리버풀은 손흥민에게 3가지 매력을 느껴 영입을 시도하려 했습니다. 골을 스스로 넣는 능력, 테크닉 그리고 마지막은 양발잡이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리버풀은 손흥민을 원했고 이적설에 토트넘과 아스널이 참전을 하면서 함부르크는 구단측이 손흥민의 몸값은 180억 이상이라며 거절을 합니다. 이후 도르트문트 원정에서 8,9호 골을 또다시 기록합니다. (꿀벌 사냥꾼). 도르트 문트와의 홈, 원정 경기 모두 승리로 만들면서 노란색 유니폼에 강한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 손흥민은 본인 커리어 처음으로 두 자릿수 골(12골)을 기록합니다. 손흥민의 나이는 만 20세. 시즌을 마친 뒤 많은 팀들이 다시 손흥민을 데려가기 위해 구애를 펼쳤고 토트넘과 도르트문트 중 저울질을 하다 가장 적극적인 구애를 펼친 레버쿠젠과 계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5년 계약). 아직은 독일 리그에서 성장을 해야겠다고 느껴 127억에 당시 레버쿠젠 역대 최고의 이적료로 이적을 합니다. 팀의 에이스 번호인 7번을 부여받으며 팀의 기대감을 받게 됩니다. 연봉도 함부르크 시절 15억에서 38억으로 2배 이상이 올랐습니다. 11월 9일 전 소속팀 함부르크전에서 프로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고 10만 점의 평점을 받는 최고의 활약을 하게 됩니다. 이제 국내 팬들은 박지성에 이어 국가대표를 이끌어줄 선수로 손흥민을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손흥민 본인도 함부르크 시절보다 더욱 발전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토트넘손흥민

레버쿠젠으로 이적 후 경기당 공격포인트가 0.42에서 0.55개로 올랐습니다. 3경기 연속 MOM을 받으며 도르트문트 천적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증명하고 3경기에서 결승골만 3골을 기록하며 꿀벌 군단을 잡는 "양봉업자'라는 별명까지 얻게 됩니다. 그리고 차범근 또한 손흥민 선수를 자신의 기록을 깨줄 선수라고 말했습니다. 기복이 있었지만 시즌 마지막 브레멘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면서 팀을 4위에 올려놓습니다. 챔스 티켓을 가져왔고 본인 커리어에서도 2년 연속 리그 두 자릿수 골을 기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시즌이 끝나고 축구선수로서는 최고의 무대인 브라질 월드컵에 막내로 참가했지만 한국은 1 무 2패에 그치며 예선을 탈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손흥민은 골을 기록하면서 한국 축구는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손흥민은 박지성의 7번을 받게 됩니다. 2015년 아시안컵 결승에서 손흥민은 골을 기록했지만 한국은 준우승을 기록하며 많은 아쉬움을 남기게 됩니다. 레버쿠젠 애 서는 시즌 17골로 챔스에서 5골을 넣고 이제 유럽이 주목하는 선수가 됩니다. 아직은 기복이 남아있지만 더욱 발전한 기술과 예리해진 슈팅은 손흥민의 슈팅력을 알리게 됩니다. 

2015/16 시즌 이적시장 막바지에 토트넘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손흥민은 자신이 많이 뛸 수 있는 팀을 선호했다고 합니다. 토트넘은 손흥민이 바라는 것을 충족해 줄 수 있었고 토트넘으로 가게 됩니다. 2015년 8월 28일 이적료 408억에 아시아 역대 최고 이적료로 이적합니다. 

 

 

 

 

토트넘에서도 7번 에이스 번호를 부여받게 됩니다. 손흥민에 대한 기대가 컸다는 반증이기도 했습니다. 연봉 또한 50억을 넘는 수준에 이적 한터라 토트넘도 손흥민이 잘해주길 많이 바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팀 내 주급 5위 정도로 사용을 하지 않는 것이 더욱 손해인 계약이라 손흥민은 많은 출전시간을 보장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계약이었습니다. 

 

 

 

 

 

토트넘 초반 손흥민은 맨시티전 부상을 당한 후 이후 폼이 올라오지 않아 경쟁상대에게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알리가 맹활약을 하며 손흥민의 자리가 점점 낮아져 갔습니다. 전 시즌에 비해 출전시간이 절반밖에 되지 않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즌 막바지 첼시, 사우스햄튼전에서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며 골을 성공시킵니다. 손흥민이 변화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15/16 시즌 8골 6 도움 기록했지만 독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오프 더 볼 플레이 수준이 이 정도라면 프리미어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라는 게 팬들의 평가가 이어집니다. 독일 팀과의 이적설이 연일 터지며 독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이르다는 팬들도 다수 있었습니다. 독일 볼프스브르크에서 378억까지 배팅하며 포체티노 토트넘 감독은 손흥민을 보내면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손흥민은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듯 16/17 시즌 14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기록하게 됩니다. 케인, 알리와 토트넘을 리그 2위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합니다. 끊임없이 지적되었던 오프 더 볼 움직임이 좋아지면서 팀에서 없어선 안 되는 공격수가 되었고 리그에서 선발 출전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나며 엄청난 활약을 하며 반전을 하게 됩니다. 

 

 

 

아시아인 최초 이달의 선수상을 차지하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MOM을 받는 등 9월 한 달을 뜨겁게 보내게 됩니다. 베스트 11에 3차례 뽑히고 EPL 선수 파워랭킹 1위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박지성과 기성용이 가지고 있던 시즌 8호 골을 넘어 프리미어리그에 한국인 최다골을 기록합니다. 이 시즌 또다시 이달의 선수상을 받으며 이달의 선수상을 두 번 받은 선수는 손흥민이 유일했고 역대 16명뿐인 대단한 기록이었습니다. 

 

 

 

 

이제는 토트넘의 완벽한 주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16/17 시즌 기록한 총 21골. 2017/18 시즌 53경기에서 18골 11 도움을 기록하며 공격의 중심이 됩니다. 

 

그리고 폼이 올라온 손흥민과 한국 축구는 마침내 간절히 원하던 병역 혜택을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해결하게 됩니다. 많은 국가대표 차출로 걱정이 있었지만 EPL 최고 효율을 보여줍니다. 30개의 공격포인트를 만들어 내며 걱정은 기후였다는 것을 보여주게 됩니다. 선수로서 최전성기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됩니다. 팬들이 선정한 토트넘 최고의 선수 올해의 골 등 개인상을 4개를 받고 최고의 선수가 됩니다. 

챔스에서 맨시티전 멀티골로 토트넘 최초 챔스 4강을 만들고 결승을 진출한 두 번째 한국 선수가 됩니다.(첫 번째 선수 박지성).

 

그리고 익히 알고 있는 최고의 시즌 2021/22 시즌입니다. 손흥민은 4년 재계약을 하게 됩니다.

초반 득점을 차근차근 쌓아갔습니다. 30라운드 웨스트햄전 멀티골로 13호 골까지 기록합니다. 토트넘은 리그 4위까지 올라갑니다. 그리고 아스톤 빌라전에 해트트릭으로 리그 17호 골을 기록하면서 리그 1위 리버풀의 살라와 3골 차까지 좁힙니다. 그 후 손흥민은 리버풀전에서 리그 20호 골을 기록합니다. 남은 경기는 3경기였습니다. 38라운드 손흥민은 21호 골을 기록해 살라와 1골 차로 마지막 경기에서 득점왕이 가려지게 되는 상황이 됐습니다. 마지막 경기는 노리치시티전 극적으로 22호 골과 23호 골을 성공시키며 단독 득점왕에 오르는가 싶었지만 살라도 1골을 성공시키며 살라와 공동 득점왕이 되었습니다. 토트넘은 챔스에 나갈 수 있는 4위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되었고 손흥민은 아시아인 최초로 득점왕에 오르는 등 겹경사가 일어났습니다. 

 

 

 

아시아최초 유럽리그 득점왕
아시아 최초 유럽리그 득점왕 손흥민

 

아시아인으로 유럽리그 첫 득점왕 손흥민의 이야기였습니다. 아직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손흥민 선수의 다음 시즌이 더욱 기대됩니다. 

한국 축구의 자랑 손흥민 선수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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